본문 바로가기
별별생각

우리 곁의, 감정이 없는 사람

by @인서 2023. 8. 26.

 

 얼마 전,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간 소설책이 있었다. 
 책 이름은 아몬드.

 선천적으로 감정을 관여하는 뇌부분에 이상이 있어 남들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한 아이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숨기고 싶지만 그런 그 아이에게서 너무나도 나와 비슷한 공감대를 느꼈고, 책을 읽으면서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었다.

 

-책 속에-

 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 라든지 '편도체' 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사람은 공포를 지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나는 웃지를 않았다.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예컨대 소리친다, 고함을 지른다, 눈썹이 위로 솟는다.. 이런 게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내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였다.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한 차례 소동이 있었던 이후로 엄마는 내게 본격적인 '교육' 을 시작했다.
 -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그 말은 들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된다. 단순히 차가 다가오면 몸을 피하라는 수준의 지침으로는 부족했다. 이제는 상대가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참 의미'와, 내가 하는 말에 담겨야 할 '바람직한 의도'까지도 함께 짝지어 외워야 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새로운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보여주며 설명할 때 그 애들이 진짜로 하고 있는 건 설명이 아니라 '자랑'이라고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럴 때 모범 답안은
 - 좋겠다.
 였고, 그게 뜻하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pixabay

 엄마의 끈질긴 노력과 매일같이 행해지던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훈련 덕에 나는 차츰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는 법을 대강 익혔다. 대부분은 그저 잠자코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침묵은 과연 금이었다. 대신 '고마워.'와 '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가지 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들을 넘겨 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그리고 열여섯번 째 나의 생일 날, 그 사건이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나만 빼고는 모두가 울고 있었다. 처참하게 죽어 버린 가족 앞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몸짓과 표정으로.
 사흘간의 장례 내내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나를 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다양한 추측을 하며 속닥거렸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럴 거야, 아직 어리니 뭘 알겠어, 엄마도 죽은 거나 다름없고 이제 고아나 마찬가진데 실감이 안 나니 저러지.
 남들은 내게 슬픔이나 외로움, 막막함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중략-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랫동안 한 집에서 같이 사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난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의 장례식을 치뤘다. 엄마와 누나를 비롯하여 가족들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며 슬픔에 잠겨있었지만, 난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치매가 있으셔서 가족으로써 못 볼 꼴도 다 봐왔던 터라 오히려 지금이라도 돌아가신게 다행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난 차마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고, 장례식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처럼 나는 나의 감정 상태를(엄연히 말하자면 아무 감정이 없는 상태를) 밖으로 비추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감정을 똑같이 따라하며 그자리에 어색하지 않게 서있는 게 나에겐 최선이었다. 그러다 어쩌다 대화가 깊어지거나 내 속을 들키게 될 때면, 냉혈한이라든지, AI 같다든지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주인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 나는 나에 대한 감정(생존을 위한 두려움, 불안, 갈망)은 갖고 있어서 부모님이 나를 교육시키기 전에 내가 스스로 사회성을 연습해 나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회성이란 옷은 오래 입기에 불편해서 집에서만큼은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가 되버리는데,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내가 가장 아끼는 가족, 아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놀라게 하기도 한다.  

 

-책 속에-

 곤이는 내게 자주 물었었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고. 내가 설명하느라 늘 애를 먹어도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심 박사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 있었다. 나 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 비슷한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멀이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중략-

 

 내가 살아온 동안에 곤이 같은 사람이 옆에 없어서 였을까, 난 책 속의 주인공처럼 감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여전히 나를 위한 감정 덩어리만 갖고 사는 듯 하다.

 지금도 마땅치 않은 내 모습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을 조금 이해하게 됐고, 위로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몬드, 손원평, 창비

반응형

댓글